Gungil 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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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Experience - 7 years old
Second Experience - At the University
균지리의 세번째 임사체험
Poetry #13

Poetry #9
Poetry #2-3
Poetry #23
Poetry #24

Poetry #10
Poetry #12

Poetry #2-11
Poetry #2-24

Poetry #11
 

First Experience description: 

저는 7살때 처음 NDE 를 경험했습니다. 그 후로 한번도 이 경험을 깊이 생각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이 경험이 특별한 경험이라고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대학 1학년때 또 다시 유사한 경험을 한 후에 ', 예전에도, 어렸을 때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구나' 했습니다. 저는 세 번의 경험을 했습니다. 첫음엔, 너무 어려서, 아무 생각이 없었고, 두번째는 그런 경험을 했다는 사실이 고마웠습니다. 세번째 경험을 했을 때는 사는 것이 놀라움으로 가득하구나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변한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첫번째 죽을뻔한 경험을 말하겠습니다. 저는 고열로 병원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병명도 모른채로, 말입니다. 사실 저는 아픈 줄도 몰랐습니다. 입원실은 특실이었고, 날마다, 선물이 들어 오고 있었기에 저는 즐거웠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제 체온을 재던 간호원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알콜 찜질 준비하고요. 그리고 의사가 왔고, 병실의 시선이 제게 집중되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저라는 깔대기 안으로 주위의 것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거의 동시에, 저는 간호원 욕을 하고 있었습니다. �간호원은 백의의 천사라고 학교에서 배웠는데, 난폭하게 제 옷을 벗기고, 아주 난폭하게 찜질을 하는구나�, 학교에서 배운 건 다 거짓말이구나 하고 말이죠. 하여간, 간호원 욕을 하면서 거의 동시에 맑고 투명한 빛을 봤고, 또 거의 동시에, 저는 관세음 보살이라고 외쳤죠.그리고 또 거의 동시에, 열이 떨어졌답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퇴원을 했습니다 이게 첫번째 이야기랍니다.

균지리의 세번째 임사체험  Gungil�s third NDE

이 이야기의 시작은 1996, 아니 94, 아니 이미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된 이야기인지 모릅니다. 어떤 식으로 글을 전개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저의 힘이 아닌, 내 안의 어떤 힘, 나 이상의 어떤 힘으로 말미암아 이 글이 잘 쓰여질 것이라 믿고 시작합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가능하다면 이 이야기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 입니다. 이 이야기에 더 이상 한 톨의 감정도 흘리기 싫어서 입니다. 다시 한번 내 안의 나를 들여다 보기 위해서 입니다.

저는 제 삶에 만족합니다. 아직 이렇다 할 어떤 것을 이룩한 것도, 그럴 가능성도 없지만, 저는 사랑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그렇게 벅찬 것인지 몰랐습니다. 그 감정을 느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제 삶에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로 인해, 다른 모든 사람들을 둘러볼 마음의 여유를 조금 더 갖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두번째 임사체험(NDE) 직후의 이야기부터 시작하고자 합니다. 두번째 임사체험 후에도 세번째 유사 임사체험때처럼 무언가를 종이에 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당시 여름 방학 내내 카메라를 둘러 내고, 이리 저리 돌아 다녔습니다. 지금도 연변서 왔다던 공지천에서 만난, 사진도 한 컷 찍은 할아버지와, 버스를 기다리다가 만난 거지 할머니가 기억납니다. 공부 열심히 하라던 할아버지의 말과 세상 어떤 풍파에도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한 할머니. 그렇게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을 보내면서 고등학교 시절의 메말랐던 감정들을 버리고 다시 감정의 옷들을 차근히 입었습니다. 다시 살아갈 준비를 했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은 아무런 예고 없이 일어났습니다. 그로 인해 2년간 많이 힘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긴 인생 속에 2, 영겁의 인생 속에 2년은 참으로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그 짧은 순간 많은 걸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죽고 사는 일은 찰나입니다. 그 찰나에 사람은 많은 걸 배우니, 저의 2년은 그에 비하면 참으로 긴 시간입니다.

 그때까지 책에서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시간이 멈추는 듯한 그런 순간이 정말로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순간이 멈추는 듯한 착각과 세상에 단둘이 존재하는 듯한 착각이 정말로 일어나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큰 길을 따라 뛰었고, 그는 그 길을 따라 뛰어와 제 손을 꼭 잡았습니다. 아무런 이야기도 필요 없었습니다. 그냥, 저는 그를 좋아했고, 그가 저를 좋아한다는 것을 100% 확신했습니다. 그런 걸 말로 굳이 표현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합니다. 불 같은 사랑을 물로 만들어야 한다고, 그래야 한 평생 같이 산다고, 저는 그 사랑을 불이라 표현하지 않겠습니다. 분명히 불 같은 사랑은 아니였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런 사고 없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어떤 것이라 하겠습니다. 만약, 제가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냥 그렇게 그를 사랑하고 잘 지내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 마저 듭니다. 저는 두번이나 임사체험을 했음에도, 그 앞에서 제 자신이 너무도 보잘것없이 느껴졌습니다. 저라는 사람을 그에게 보인다는 것이 무서워서 도망쳤습니다. 그 친구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94년 가을에 만나 겨울 방학때 우리는 아무런 이유 없이 연락을 끊었습니다. 서로 아쉬움과 그리움을 남기고 말입니다. 그 후에, 딱 한번 더 그를 길에서 만났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일상적인 말을 남기고 뒤돌아서 걸었습니다. 그렇게 94년도는 저물었고, 저는 대학 2학년이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그와 닮았기 때문에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말을 이해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안성기라는 배우가, 그와 닮았기 때문에, 안성기를 좋아하기 시작했습니다. 얼굴이 비슷한 사람만 봐도, 뛰어가서 얼굴을 확인하곤 했습니다. 딱 한번 친구들과 같이 갔던 노래방에서 그가 불렀던 노래를 다시 듣고 싶어서 김현철 테잎을 샀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그리움은 병이 되기 시작했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언제나 학교 생활을 바뻤고, 해야 할 일들은 많았습니다.

 2학년 여름, 새로 입학한 새내기들을 데리고 영유도라는 섬으로 MT를 갔습니다. 누구를 탓하지 않습니다. 누구는 강간으로 임신을 하고, 누구는 강간으로 에이즈가 걸렸다고 신문에 나오기도 하니 저는 수 많은 여자들이 당하는 그 일을 아주 가볍게 당한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날 저녁 술을 참 많이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름도 생각 안 나는 후배가 새로 입학한 후배가 그랬다는 것 밖에는 여기다가 언급하기 싫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는 그 기억을 깊숙이 쳐박고 문을 잠그기 전에 한번 훑어 보았습니다. 제가 듣고 있던 성격 심리학이라는 과목에서 자신의 성격을 분석하고 글을 쓰라는 숙제가 나왔고, 저는 제 레포트에 이런 이야기를 쓰지는 않았지만, 그 일을 한번 꺼내서 훑어 봤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아주 깊숙이 넣어서 어떤 누구도, 저 조차도 그런 일은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가두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해 가을 누군가를 사귀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한다는 감정이 아니라, 그냥, 잘 해주는 사람이 있었기에 그 사람이 사귀자고 했기에 그냥 사귀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람에게 익숙해 졌습니다. 아니 서로에게 익숙해 졌습니다. 거의 날마다 밥을 같이 먹고, 같이 공부하고, 그 사람의 목소리에 아침 잠에서 깨어나고 많은 시간을 함께 했습니다. 몇 번인가, 그 사람에게 헤어지자는 편지를 썼던 것 같습니다. 잘 해주어서 고맙지만 이건 아닌 것 같다는�하지만 실천을 하지 못했습니다. 제 자신이 힘들어서 그에게 그렇게 기대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다음 학기 교환학생으로 1년간 멕시코에 갈 예정이었습니다. 그는 저와 좀더 가까워지고 싶어했습니다. 손을 잡고 함께 밥을 먹는 것보다 좀더 가까운 것을 원했습니다. 저는 잘 할 수 없었고 두려웠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원하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도 처음이었고 모든 것이 어설펐고 재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것도 뒤돌아 바라 보면, 이제는 웃을 수 있는 이야기가 되었다는 것에 저는 지금 이순간 그저 놀랄 다름입니다. 그런걸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것은 아주 쉽게 학습이 된다는 것. 아마도 성적인 것에는 아주 금방 익숙해 지거나 몸과 마음이 고정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몸도 마음도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저 그에게 미안한 마음에, 무언가 잘 해주고 싶었지만, 마음 먹은 대로 그에게는 잘 해줄 수는 없었습니다. 물론 저도 그도 경험이 없는 사람들 이어서 그랬는지 모릅니다. 저는 누군가가 몸을 대는 것조차 싫어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무언가 잘 해주고 싶은 마음은 늘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고마운 사람입니다. 그가 제 마음을 알았는지 그런 것은 모르겠습니다. 단지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그는 이곳을 떠났고, 저는 이곳에 남았습니다. 그는 한 달이 멀다 하고 편지를 보냈고, 저를 약혼녀라 불렀습니다. 한번은 상자 가득 선물과 반지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대학 3학년이 지나갔습니다. 학기 초에 걸린 감기는 제 몸을 약하게 했고, 기침이 떨어지지 않더니, 급기야 결핵이 재발했습니다. 3학년 1학기 참으로 힘든 시간이었던 것같습니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이유 없이 흘렀던 눈물들, 이유 없이 힘든 날들, 모든 것이 조금씩 엉망이 되었습니다. 멀리서 바라보면 알 수 없지만 가까이서 바라보면 조금씩 아주 조금씩 모든 것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약을 먹기 시작했지만 차도가 없었습니다. 한 학기 동안 균을 잡지도 못했고, 균이 어떤 종인지 파악도 못했습니다. 한 번은 자다가 일어났는데, 울컥 무언가 덩어리가 넘어와 목에 걸렸습니다.  뱉었더니 핏덩어리였습니다. 저는 피를 토한다는 것이 그런 것인 줄 그때 알았습니다.

 제게는 힘들 때 마다 편안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선배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선배에게, 교환학생으로 가있는 남자 친구에 대한 조언을 구했던 것 같습니다. 그를 좋아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는, 그런 식의 이야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두번째 사랑은 연민인지 사랑인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모릅니다. 천천히 시작되다가, 그냥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아니 아직도 제 깊숙한 가슴 한 복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 이야기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지 모릅니다. 최소한 당분간은 말입니다.

 이제 두번째 제 사랑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저보다 서너살 많은 사람입니다. 어느 순간 이 선배가 저를 좋아한다는 느낌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어떤 식으로 설명해야 할 지 모르지만, 그가 저를 만지고 싶어하지만 참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 오는 날 같이 우산을 쓰면 저린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도 다시 누군가를 좋아하기 시작했다는 그런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그 사람이 저를 좋아한다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그 사람이 아직도 기억할 지 모르지만, 휴학하고 서울을 떠나기 전날, 우리는 걷고 또 걸었습니다. 손을 꼭 잡을 줄도 모른 채, 그냥 그저 옆에 있는 것이 좋아, 그 날 저녁, 날이 새도록 걷고 또 걸었습니다. 사랑이란 건 같은 짓이라도 좋아하는 그 사람이 하면 싫어하던 그것 조차 좋아 보이게 되는 것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그가 갖은 모든 것이 제 눈에는 만족스럽고 이해가 되고 수용되었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남자 옷을 사 보았습니다.  제 고향인 춘천과 서울은 기차가 다닙니다. 어떤 때는 내려오는 기차와 올라가는 기차가 중간에 만나 한 쪽 기차가, 다른 쪽 기차가 지나가는 것을 기다려야 합니다. 하루는 병원을 가는 날이어서 아침 일찍 기차를 탔는데, 춘천 가는 기차에 그 선배가 있는 것을 보고는 어찌나 기쁘던지 그 순간 그 선배가 클로즈업 되어서 화면 가득 보였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틈에서 누군가를 알아 본다는 것이 참 신기했습니다. 그것도 화면 가득 그 사람이 보였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저는 그 사람과 첫 키스를 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키스를 해봤고, 고백이라는 것을 받았고,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아직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참으로 그림 같은 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도 그 사람도 쉽지 않은 강을 건너야 했습니다. 저는 죽을 힘을 다해서 저를 다시 보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감정의 응어리들을 걷어 내야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말해 본 적도 없는 그 일을 왜 그 사람에게 꺼내기 시작했는지 지금도 알 수 없지만, 저는 그 일을 그림 보듯 다시 읽어 내기 시작했고, 말이 힘들어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사 준 몇 개 안 되는 선물들이 이제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우산은 망가졌고, 컵은 깨졌고, 단지 피천득의 인연이란 책만 고향집 어딘가에 있습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영원이 간직하고 싶어, 혹시 함께 추억이라도 뒤적일 순간이 있을까하고 간직한 나우누리 대화창의 글들이 아직 고향집에 남아 있습니다. 그는 제게 키스를 잘한다고 했습니다. 그저 그에게 호흡을 마추었으니까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키스가 그런 것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렇게 사랑을 하는 거구나 했습니다. 그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고, 저는 춘천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한번은 춘천에서 한번은 서울에서 그렇게 주말에만 만났습니다. 고백을 받고, 키스를 하고, 그는 우리 집 근처 여관에서 잠을 잤습니다. 아침 일찍 저는 그에게 밥을 가져다 주고 싶었습니다. 얼른 일어나 빵을 만들어서, 아니 제가 만든 것이 아니라 언니에게 부탁을 해서 맛있게 만들어서 그에게 갔습니다. 저는 겁은 났지만 그에게 제 몸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만질 수 있도록 하고 싶었고 저도 만지고 싶었습니다. 그는 옷을 벗는 것을 알았겠지만, 저는 옷을 벗어야 하는 것조차 몰랐습니다. 그냥 그가 제 몸을 움직이는 대로 그렇게 움직였습니다. 모든 것이 제겐 완벽했습니다. 그도 옷을 입고 있었고, 그의 청바지 아래에 발기된 그의 것과 제 바지 안의 열린 음부가 느껴졌습니다. 서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도 그도 옷을 벗어야 한다는 생각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니, 그가 저를 위해서 제 옷을 벗기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제 감정이란 것을 누군가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 후에 그 선배에게 사귈 수 없노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누군가와 사귀었고, 그 사람과 헤어지고 당신과 사귈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제가 죄를 졌고, 그 대가를 치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아니 교환학생가 있던 그 사람에게 미안해서 누군가를 사귈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전화 한 통화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노라고 멕시코에 있던 사람과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저를 강간한 후배에게 편지를 써서 학교로 보냈습니다. 용서한다는, 그 동안 힘들었다는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그 후에 사랑을 다시 느끼게 해준 그 선배를 만났습니다. 제 상태가 아주 나뻤습니다. 그도 그걸 알았습니다. 그날 우리는 만나지 말았어야 했는지 모릅니다. 저는 제 기억 속에 빠져 있었고 모든 것이 단서가 되었습니다. 그가 하는 말, 내가 느끼는 감정들 그런 모든 것들이 단서가 되어서 저는 기억 찾기에 몰입되어 있었습니다. 그가 그랬습니다. 너는 왜 나한테 아기같다는 말을 하니하고�그 순간..아주 천천히 제가 최초로 그 단어를 사용했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아주 천천히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저는 제 기억들을 다시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강간이라는 것과 함께 바다 깊숙이 묻어 두었던 첫사랑에 대한 기억을 조금씩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그는 약간의 짜증을 냈고, 저는 그가 섭섭했습니다. 다음날 새벽 그를 만났습니다. 그가 그랬습니다. 전에 여자친구랑 헤어질 때도 그랬다고..저는 그 순간이 마지막 순간이라고 생각하고 뒤돌아 본 후 나왔습니다. 화가 났고 섭섭했습니다. 그렇게 힘들었는데, 조금만 더 이해해주고, 조금만 더 나를 생각해 주었으면 했습니다. 저도 욕심이 참 많습니다. 그 날 저녁 저는 누가 들을까 겁이 나서 이불 속에 들어가, 수건으로 입을 틀어 막고 울었습니다.  어찌나 울었는지 코 밑이 헐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제게 이유를 묻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저희 가족은 참 현명합니다. 아니면 제가 완벽하게 연극을 했는지 모릅니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아퍼도 아픈 척 안 내고 말입니다. 저는 계속해서 흐르는 눈물을 어찌할 수 없었고, 급기야, 만화책을 빌려왔습니다. 누가 왜 우냐고 물으면, 만화책을 읽어서 눈물이 난다고 거짓말을 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그 순간, 저를 강간했던 그 아이를 용서했던 마음을 철회하고 싶었습니다. 절대 용서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날, 책상 위의 책을 꺼내는데, 우연히 사진 한 장이 떨어졌습니다. 그리움이 느껴졌습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처음 가르쳐 준 친구의 사진이었습니다. 너무도 어렴풋한 그리움이 있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 친구를 내가 알고 있어지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가끔 세상을 살다 보면 모든 것이 완벽하다는 착각을 하게 됩니다. 그 순간이 그랬습니다. 첫사랑에게 온 전화였습니다. 그 전화를 받고 수화기를 내려놓는데, 저는 모든 기억을 다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모든 기억의 문이 열렸습니다. 그날 우리는 만났고, 정식으로 헤어졌습니다. 저는 그의 지난 이야기를 들었고, 저는 그에게 이쁘게 접자는 편지를 주었습니다. 그와 춘천의 명동에서 악수를 하고 돌아서서 뛰는데, 눈물이 이유 없이 볼을 타고 내렸습니다. 이 것이 제 사랑 이야기의 끝입니다.

그 후에, 길을 걷다가 유사임사체험을 했습니다. 저는 임사체험에서 누군가를 만난 적도 누군가를 본적도 없습니다. 어려서는 그 신성한 느낌을 그냥 알았고, 물론 그땐 그런 감정이 신성한 것인지도 몰랐습니다. 그저 두번째 경험과 동시에 어려서도 그런 적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한 것입니다. 두번째 때는 꿈 속에서 터널을 지났고, 깨어나면서 그 신성한 느낌, 붕뜨는 느낌과 함께 고등학교때 제 삶을 한번 다시 보았습니다. 이 번에는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가을이었고 은행 나무가 이쁘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갑자기 이번에도 이겼구나 참 힘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마치 전투에서 돌아와 승리를 감격하는 그런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붕 뜨는 기분이 들더니, 온 세상이 빛으로 가득했습니다. 그건 마치 안경을 바꾸어 쓰는 것과도 같았습니다. 한 순간 찰나에 세상의 색깔이 변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때 알았습니다. 우리들이 느끼는 색이 다 같은 색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고호가 그린 그의 방도 그의 감정에 따라 빛의 톤이 달라 집니다. 화가는 같은 사물을 그린다 해도, 언제나 같은 색깔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 후, 저는 약 한달 간에 걸쳐 시들을 썼고, 그 일부가 조디 홈페이지에 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두 편의 시는 아직 그 곳에 없습니다.

저는 임사 체험을 한 순간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임사 체험, 그 순간은 한 순간입니다. 하지만, 세번째의 경험은 제게, 누구나 다 그 순간 즉 죽음에 임박한 순간, 임사체험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었습니다. 모두가 살면서 임사체험을 똑바로 해 나갈 준비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준비가 덜 되고, 어떤 사람은 다 됩니다. 어떤 사람은 임사체험을 해 내고 어떤 사람은 실패합니다. 지금 이 순간 제 기억이 올바른 기억인지 모르겠습니다. 한 순간 다시 보는 기억만이 완벽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억들을 다시 보고 영화 보듯 한 순간 모든 것들을 이해하는 그리고 그 기억의 감정들로부터 빠져나오는 그 순간은 임사체험 그자체 혹은 그와 유사한 의식 상태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꼭 죽음을 앞두고 그 상태에 들어 갔던 것이 아닌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죽음에 임박하지 않은 채 그 상태에 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벌써 그 방법을 알 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단지 저는 제가 살아 가기 위해서 들어 갔다 나왔을 뿐, 어떻게 들어 갈 수 있었는지 어떻게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들어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지 모릅니다. 그것을 알 수 있다면 세상에 아픈 사람은 없어질 지 모릅니다. 그것을 알 수 있다면,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경험한다면, 세상의 겉모습은 같아도, 전혀 다른 세상이 될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방법을 모릅니다. 물론 알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모릅니다. 그리고 저는 임시체험 후에 갖게 된다는 어떠한 능력도 없음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끝으로, 이 곳에 언급된 사람들과, 저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께 감사합니다. 저의 못난 점과 나쁜 점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죄송함을 전하고, 그냥 웃어달라고 하고 싶습니다. 저는 그냥 저입니다. 이런 경험을 했다고 해도, 저는 아주 평범한, 싫으면 싫다고 하고, 좋으면 좋다고 하고, 웃고 화내고 싸우는 그런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용서를 바랍니다. 그 사람이, 사랑을 다시 가르쳐준 그 사람이, 제게 약속을 해 준 것은 아닙니다. 제가 약속을 구했고, 저는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 약속을 마음에 담고 있었습니다. 이 약속을 죽는 순간까지 가져가야 하는지 버려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버릴 수 있다면 지금 이 순간 버리고 싶습니다.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면 아주 바다 깊숙이 묻어 버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죽는 순간이 되기 전에는 결코 열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그 사람과 다음 생에서 만나자고 약속했습니다. 인연이 되면 다음 생에서 다시 만나자고 했습니다. 서로 좀더 성숙한 후에 다시 만나자고 했습니다. 다음 생에서는 오래 오래 나는 그만을 그는 나만을 바라보며 살자고 약속했습니다. 저는 그런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약속을 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나이 스무살 때의 이야기입니다. 참 지키기도 힘든 약속을 그때, 아무 생각 없이 했던 것 같습니다. 성경의 어느 구절에 있는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어딘가에, 함부로 약속을 하지 말라고, 임박한 시간에 되돌아 갈 수 없다는 그런 구절이 있었다고 기억합니다. 물론, 글자 그대로 그렇게 쓰여져 있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그렇게 이해한 구절이 있었습니다. 저는 성경도 불경도 잘 모릅니다. 저는 종교에 대해서는 열린 마음 그 자체지만 교육을 받은 일은 없습니다. 그 사람도 만약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한다면, 저는 그 사람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철 없을 때, 했던 이야기라고, 그냥 묻어 버리라고, 그냥 묻어 두고 한평생 살아가자고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첫번째 사랑을 가르쳐주고 멀리 간 친구에게는 그저 잘 지내라고 하고 싶습니다. 너가 복학을 하고, 한 학기 동안 무던히도 마주쳤지만, 감정들을 만들지 않고 없애기 위해서 그랬노라고, 감정을 흩뿌려서 하나도 남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랬노라고, 용서하라고, 나쁜 추억이 되었다면 더더욱 나를 용서하고, 잊어 버리고 그래도 좋은 추억으로 기억할 수 있다면 그저 잘 살아달라고, 기억 조차 나지 않는다면, 나는 할 일을 다 한 것이라고, 그만큼 너란 사람의 인간성과 능력을 믿는다고, 나는 그 순간은 사랑했지만 더 이상은 사랑하지 않는다고, 나를 다시 살게 해주어서 고맙지만 산다는 건 그냥 그런 거라고, 하지만 어떤 사람의 능력보다도 너란 사람의 능력을 믿는다고, 믿었다고, 내가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기도를 그래도 너를 위해서 했었다고,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더 이상 유사임사체험을 하지 말게 해달라고, 유일하게 너만 죽음 앞에서가 아니라, 그냥 삶 속에서 임사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 했었다고, 지금은 그 기도마저 정말 철없었다고 생각한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이제 저는 서른을 바라봅니다. 아무것도 한 일이 없이 늘 새 출발입니다. 사랑에 대해서도, 일에 있어서도 새 출발을 하고 싶습니다. 내년도에는.

2003 10 13일 한국에서 균지리 씀

 가족들께 감사합니다.


second Experience description: 

두번째 임사체험담을 적겠습니다.

정확히 임사체험담인지, 유사임사체험담인지 어떤 분류에 들어 가야 올바른지 모르지만 그냥 적겠습니다.

저는 정확히 죽음이라는 것을 경험했고, 어려서 경험했던 죽을 뻔했을 경험했던 느낌들을 다시 느꼈습니다. 하지만 죽어서가 아니라 살아서였습니다. 물론 물리적인 저는 살아 있는 상태였지만 영혼은 죽어있을 그런 경험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야기는 중고등학교때부터 시작되어서 대학교 1학년때 끝마무리를 지은 같습니다.

중학교때 어떤 친구보다도 자유롭고 동정심이 많았고 많은 책을 읽던 그런 아이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당시 수레바뀌 밑에서라는 책을 읽으면서 학교라는 것이 현재 살고 있는 삶이 힘들다는 생각까지도 했던 같습니다. 다른 친구들처럼 시험이라는 것을 싫어했고, 학교 다니는 것을 아주 싫어했습니다. 이런 증상은 고등학교를 들어 가서는 심해졌습니다. 저는 살까, 공부할까, 내가 고아라면 학교 같은 것은 그만둘텐데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시험때가 되면, 부모님께 있는 그저 시험점수를 받아서 만족시켜드리는 것이라 생각하고 시험공부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시험기간이 끝나면 생각을 했습니다. 살까 공부할까, 죽으면 그만인데 이리 살까�.물론 저는 공부를 잘했습니다. 아니 공부를 잘했다기 보다는 상당한 기억력의 소유자였습니다. 아니 의식적으로 교과서적인 것들을 기억하려고 애를 썼는지 모릅니다. 아니 시험때만 모든 것을 기억했습니다. 순간에만 그리고 백지처럼 아무런 것도 기억을 하지 않았던 것도 같습니다. 저는 중학교 2학년때부터 언제나 반에서는 1 2등을 했던 같습니다. 반에서 1, 2등은 전교 1, 2등을 뜻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을 들어갔습니다. 원하던 심리학과에 들어 갔고, 원하던 학교인 고려대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저는 결핵이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몸이 굉장히 약했기 때문에 언제 정확히 결핵을 갖게 되었는지는 없지만, 고등학교 3학년 우연히 급성장염으로 병원에 입원을 했다가 결핵 판정을 받았습니다. 결핵이었기에 술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고려대학교라는 곳이 술로 유명한 학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신입생환영회때는 사발식이라는 것을 해야 했고, 전통있는 동아리들은 선배들이 고래들처럼 술을 마셨고, 여자들도 예외는 없었습니다. 저는 권하는 술을 마음껏 먹고 싶다는 생각을 버린 같습니다. 하지만 병원에서 먹지 못하게 했기에 마음껏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고, 여름방학 의사 선생님은 술을 먹어도 된다고, 약을 그만 먹자고 했고, 여름방학, 저는 날잡고 술을 진탕 먹어버렸습니다. 그냥 그렇게 술이라는 것이 궁금했습니다. 아주 많이 먹고 숨이 끊어져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잠을 자고 일어 났다고 생각했고, 술을 많이 먹은 사람같지는 않았습니다. 정신도 멀쩡했고, 갈증도 없었고, 냄새가 나지도 않았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한라산 정상까지 등반을 해도 아무런 무리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보통 상태와는 다른 상태였습니다. 그러니까, 몸은 자연스럽에 움직이지만, 약간 나라는 실채가 몸과 분리되어서 내가 나를 지켜보는 상태, 아니 그보다는 나와 남에 대해서 좀더 느낌이 컸다고 해야 하나요.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제주도 촬영 뒤풀이로 저희는 고대 앞에 있는 유일한 락카페인 코코에 갔습니다. 춤을 추는데, 선배들이 춤을 춘다고 저를 가운데로 밀어 넣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죽는 순간 느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주변을 화면처럼 보고 나라는 깔대기에 주변이 몰려드는 같고, 저는 이상 춤을 없어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다음날, 저는 꿈을 꾸었습니다. 새벽녁 잠을 자다가 깜짝 놀라서 깨어났습니다. 꿈의 시작이 어떠했는지 어떤 내용이었는지 저는 모릅니다. 단지 저는 검은 터널을 아주 빠른 속도로 쿵하고 떨어졌고, 붉은 십자가 비슷한 빗을 보고 눈을 떴습니다. 동시에 저는 붕뜨는 느낌을 느꼈고, 고등학교때의 모습을 아주 빠른 속도로, 살까 고민하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살아야 하는지 깨달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착하게 살자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이 고맙게 느껴졌고, 살아 간다는 것이 고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Poetry #13

자신을
낭떠러지로
낭떠러지로 몰고가면

그 순간
누군가
당신을 벼랑 아래로
뛰민다해도

당신이
땅에 닿기 전에
낙하산이 펴진다네.

언제나 그렇다네.
언제나 그 후엔 빛이 있다네.
튀어 오름이 있다네.
 

Poetry #9  苦集滅道

苦集滅道

길이 보일때까지,
끝까지 지지마.
너자신에게 말야.

길이 보일때까지
너 이외의
다른 어떤 사람도
믿지마.
너 자신만을 믿어

너 자신에게만 취해봐.
술먹은 것처럼말야.
그럼 길이 보일 거야.
미치기 직전에 말야.

그리고 길이 보인 후에도,
'사랑'을 잊지마.
'용서'를 잊지마.
'세상살이'를 잊지마.

'삶' 속에서
너가 깨달은 '도'를 지켜.

그것이 어렵더라도,
그것이 힘들더라도.
 

Poetry #2_3

우린

난 내삶을 살거야
난 내식대로 살거라고
난 나야라고
때론 외친다.


난 지쳤어
난 이것 뿐이야
라고 되낸다.

하지만
내 삶이, 내 생각들이
내가 있기 위해선

우연이라고 이름 붙이기엔
너무도 필연적인 이 모든 것들

이런 모든 걸 삶이라 하는게 아닐까

마치 술에 취하듯
삶에도 취하고 싶다


Poetry #23

난 너처럼 무너진 인간을 본 적이 없어.
무너지려거든 아름답게 투명하게 무너져

탁하고 아둔하게 무너지지 말고
난 값싼 동정은 죽어도 못 하니까
난 비참했지만, 넌 더러웠어.

왜 사랑하는 척했지.
첨부터 섹스만 원한다고 하지.
그럼
첨부터
이럴 필요 없었잖어.
왜 사랑하는 척했어.
더러운 자식.

난 바보가 아냐
너에게 자격이 있을 때
난 널 다시 볼거야.
하지만 맘이 없다면
절대 하지마
결정은 확실한게 좋아.
값싼 미련은 너나 가져

너가 더러워서 난 더 비참했던 거야.
넌 더러웠어.값싼 동정은 너나 가져.
난 너에게 말했어.
너 이생의 주인이 되라고
철저하게 주인이 되라고

Poetry #24

맘이 있다면
기더리가 되어줘

맘이 없다면

다시는 여기 오지 말고

약속은 했지만
여기 오기 정말 두려워

맘이 있다면
기러기가 되어줘

Poetry #10

각각은 각자의 길을 걷고 있네.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각자의 길을

함께 걷는다해도
혼자 걸을 수 밖에 없는 이 길을

안개 속에 뒤덮인채
우리는 혼자 걷고 있네

Poetry #12

죽음을 안다는 건
삶을 안다는 것
하지만, 안다고 해서 해결 되는 건�하나도 없다.

Poetry #2-11

나 이제야 알았네
시시 때때로 변하던
내 마음 속의 나무가
오직 하나만을 뜻하는 것임을

나 이제야 알았네
그 곳에 당도 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빨리 도착하든
늦게 도착하든
어떤 길을 택하든
상관 없음을
나 이제야 알게 되었네

하지만 두렵네
도달 할 수 있을지
 

Poetry #2.24

'하얀색 종이는
깨긋하지만
더러워지기 쉬워,

우린 하얀 도화지이ㅔ
색칠을 하며
사는 거란다.

하얀 도화지는
다시는
하얗게 될 수 없는 거야

인생이란 그런거야'

그 누가 그랬던가 ?

우리는 그 위에 색칠만 하며 사는 거라고
아주 깨끗한 하얀색은 다시는 만들 수 없는 거라고

그 누가 그랬던가 ?

왜 모르는 것일까 ?

도화지를
팽이처럼
빠르게 돌리면

도화지가
빛처럼
하얘질 수 있다는 것을

하얀색엔 모든게 녹아 들 수 있다는 것을

단지 여려운 일은
색을 마춰
도화지를 돌리는 일이란걸

왜 모르는 것일까 ?

아픈 후에는 언제나
원점이다.
도화지만 커질 뿐
언제나
원점이다.

Poetry #11

저기 저기
어..저기.....저 시커먼 곳은 어딜까
악...소름 끼쳐
온통 어둠 뿐이네
아..저기 저기 성이 보여
어둠 속에 성이 있어
저 새는 무얼까
저 새들은 왜 저렇게

눈을 뜨자 그 성은 없어져 버렸네.
손을 대자 그 성은 흩어져 버렸어.


그 성을 찾아
헤맸네
하지만 찾을 수 없었어
이 곳엔
어둠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거든

난 그 어둠이 궁굼했어.
너무도 궁금했지
내가 모르는 그 곳이
너무도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어

난 그 곳이 어디있는지
그 곳이 어디 있는지
찾아 헤맸지.

하지만
난 눈을 떴고
이제야

난 알게 되었네

내가 그 곳에
내 한 다리를
디디고 서 있음을